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BS NEWS (문단 편집) == 역사 == 그 뿌리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라디오)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당시의 [[조선방송협회]]가 있다. TV 뉴스는 1961년 12월 31일에 [[한국방송공사|KBS]]의 개국 이후 1962년 1월 15일부터 정규방송의 본격적인 실시에 맞추어 저녁 8시 30분에 10분 뉴스의 첫 방송을 시작으로 뉴스 프로그램 편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만 수, 금요일에는 편성되지 않았고 일요일에는 뉴스가 밤 9시까지 30분 간 방송되는 등 편성이 불규칙적이었으며 비중 높은 [[뉴스]]의 편성은 여전히 라디오에만 의존했다. [[1963년]]부터는 1년 6개월 동안 편성이 중단되었다가 1964년 8월 31일에 방송 개편에 따라 재개되었다. 다만 일요일에는 뉴스를 편성하지 않았다. 1968년 문화공보부 산하 서울중앙방송국, 텔레비전방송국, 국제방송국 3개 국이 통합되어 '중앙방송국'으로 출범하자 기존의 방송과 보도계를 '보도부'로 개편했지만, 강동순 전 감사의 저서 이나 KBS 사우회가 쓴 <그때 그 시절 KBS 이야기> 등지에서 보듯 문공부 산하 조직 시절의 KBS 기자들은 '공무원' 취급을 받아 출입처 기자단에 가입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1973년에 공사화되면서 '보도국'으로 개편되어 방송총국 예하에 속했고, 휘하 부국장을 취재-편집 2개 분야로 나누고 해설위원실을 따로 두었으며, 취재부국장 휘하에 정경-사회문화-전국-체육 4개, 편집부국장 휘하에 편집-특집-외신 3개 부서를 각각 통괄토록 했으며 카메라취재반 및 특집제작반은 외곽 조직으로 했다. 반면 지역국은 한동안 방송과 관할이었으며 공사 출범 후 일부 지역국에 한해 '방송부'로 격상시켰다. 공사화 이후 신문사/통신사 등지의 외부 기자들을 스카웃하면서 언론사다운 조직으로 점차 거듭났다. KBS 뉴스는 [[스트레이트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서 기자가 리포팅하는 방식의 뉴스 프로그램이 보편화되었다. 1975년에는 워싱턴-도쿄-런던 3개 해외지국을 처음 두고 1977년 정경부를 정치-경제 2개 부서로 나누었다. 1980년 6월 카메라취재반 및 특집제작반을 '부' 단위로 승격시킨 후, 9월에는 총국제 폐지 후 이사 휘하로 바뀌었다. 동년 12월 '보도본부'로 승격되어 본부장-부국장-부장-차장 체계로 바꾸었고, 부국장도 라디오-제작-취재-체육-카메라취재-특집 등 6개 분야로 나누었으며 서무반도 두었다. 또한 정치부 등 취재 관련 부서들도 TV와 라디오로 각각 쪼개졌다. 1981년 5월 아침방송 부활에 따라 아침뉴스 프로 가 신설되었으며, 9월 본부장의 직급을 이사급으로 올리고 기술본부로부터 보도기술부를 넘겨받았고 이듬해 부본부장직을 신설했다. 1984년 7월 직제개편으로 기존 보도본부 산하 부 단위 부서들을 '센터' 혹은 '실' 단위로 묶어 뉴스센터-기획보도실-스포츠제작실 3개로 짰고, 보도관리부와 보도기술부를 따로 두었다. 또한 휘하 부서들도 취재1~5[* 각각 정치, 사회/문화, 경제, 과학, 국제 순으로 했다.], 촬영취재, 뉴스제작실, 라디오제작 등 8개 분야로 나눈 후 기존의 부국장-부장-차장 체계를 주간-부주간(실장 or 총감독)-담당 순으로 바꾸었다. 10월 29일 가을개편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명 체계를 'KBS 뉴스센터'로 했다. 1985년에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주간기획, 사회, 외신, 남북대화, 뉴스제작실, 총괄, 제작심의, 라디오, 네트워크 등으로 또 짰다가 1986년 11월 3일 추동계 개편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명 체계를 과거의 'KBS 뉴스' 체계로 환원시켰고, 12월부터 뉴스센터와 스포츠제작실을 '보도국'과 '스포츠국'으로 각각 바꾸었고, 체계도 국장-부국장-부장-차장 순으로 되돌린 후 부국장직을 취재-편집-라디오편집-카메라 4개 분야로 짰으며, 영상편집부도 신설했다. 1988년에는 편집부국장을 TV-라디오로 각자 이원화한 후 1989년에는 통일문제연구소를 개설했다. 1990년에는 기획보도실을 '보도제작국'으로, 부국장을 '주간'으로 각각 바꾸고 1991년 조직개편 때 신설된 '방송총본부' 밑에 속했다가, 1993년 방송총본부가 폐지되어 다시 사장 직속이 되었다. 1994년 2월에는 보도국장 휘하에 국제주간직을 신설했고, '카메라출동'에 맞설 코너를 만들고자 TV편집부 밑에 기동취재부주간직을 신설했다가 8월에는 기동취재부주간직을 사회부로 넘겼다. 1996년에는 취재주간을 취재1~2주간으로 나누고 1998년 5월에는 사회부를 사회1~2부로 나눈 뒤 기동취재부주간직을 떼내 '기동취재부'로 격상시켰으며, 12월 TV-라디오제작 2개 주간직을 '편집주간'으로 일원화시켰다. 2000년 'kbsnews.com'을 개설한 후 2002년 편집주간을 편집1~2주간으로 나눴고, 2004년 조직개편 당시 팀제 도입에 따라 본부-국(실)-부 단위를 '본부-팀' 체계로 개편했고, 보도전략기획, 보도운영, 해설, 1~2TV뉴스제작, 라디오뉴스제작, 인터넷뉴스, 취재1~4, 국제, 시사보도, 스포츠취재/제작, 스포츠중계/사업, 영상취재, 영상편집제작, 보도기술, 영상그래픽 등 19개 팀으로 했다. 2005년 4월 보도전략기획팀을 '보도총괄기획팀'으로 바꾸고 탐사보도팀을 신설했으며, 동년 12월 보도총괄기획팀을 '보도총괄팀'으로 또 바꾸고 인터넷뉴스팀을 '디지털뉴스룸', 취재1~4팀을 정치외교, 경제과학, 사회, 네트워크, 문화복지 5개 팀으로 다시 짰다. 2008년 12월 조직개편에 따라 '본부-국-팀' 체계로 다시 짠 뒤 보도-보도제작-스포츠-영상취재 4개 국으로 했고, 보도기술팀을 '주간' 단위로 바꾸었다. 2009년 편집주간직을 부활시켜 1TV 및 2TV 뉴스제작팀, 라디오뉴스제작팀, 인터넷뉴스팀을 휘하에 둔 후 2010년 6월 조직개편에 따라 팀 단위 조직을 '부'로 되돌리고 영상취재국을 '보도영상국', 보도제작국을 '시사제작국'으로 각각 바꾸고 구 제작본부 기획제작국의 <추적60분> 제작업무를 시사제작국으로 흡수하기도 했으며, 보도기술 업무를 제작리소스센터로 넘겼다. 또한 보도국 휘하 주간직도 취재-편집-인터넷뉴스 3개 분야로 했다. 2013년 인터넷뉴스 관련 부서들을 묶어 '디지털뉴스국'으로 짰고, 국제주간직을 부활시킨 후 <추적60분> 제작업무를 TV본부로 다시 넘기기도 했다. 2016년 5월 보도국-디지털뉴스국-보도영상국 세 곳을 합쳐 '통합뉴스룸'으로 출범시킨 후, 시사제작국은 제작본부 산하 TV프로덕션2로 옮겼다. 또한 탐사보도팀 및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보도기획부로 넘겼다. 2019년에는 시사제작국을 부활시키고 2021년에는 통합뉴스룸에서 영상부문을 떼내 보도영상국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러나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이른바 [[땡전뉴스]] 등과 같은 정권찬양의 나팔수로 활약한 [[흑역사]]가 있다. 지금은 다 청산한 모양으로 보이는 듯 하지만 대통령이 아직도 KBS 사장을 임명하고, 이사회 비율이 여7 : 야4인 걸 보면 아직도 영향이 남아있기는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